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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발적 커뮤니티 전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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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연 | 2008/06/16 14:29 | exhibition | 트랙백 | 덧글(0)
Come Quick Danger(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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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연 | 2008/06/16 14:27 | come quick danger | 트랙백 | 덧글(0)
개인의 깃발, Flag of an Individual(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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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연 | 2008/06/16 14:26 | come quick danger | 트랙백 | 덧글(0)
작은 규모의 공격과 피격, Attacking and Being Attacked in Small-Scale(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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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연 | 2008/06/16 14:24 | come quick danger | 트랙백 | 덧글(0)
포로들의 제스츄어, POW's Gesture(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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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연 | 2008/06/16 14:21 | come quick danger | 트랙백 | 덧글(0)
폭격상황도, Bombimg Situation Map(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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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연 | 2008/06/16 14:16 | come quick danger | 트랙백 | 덧글(0)
text-2008

불쾌한 이웃의 폭력성에서 시작된 게릴라식 저항
 
 
작업의 주된 모티브는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유전적으로 잠재된 이해하기 힘든 사고나 행동에서 나오는 불쾌한 폭력성이다. 현재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폭력성은 그들의 부모, 조부모들이 과거에 겪은 경험들과 무관하지 않다. 불쾌한 폭력성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는 다시 말하면 ‘행복해질 수는 없는가’라는 생각을 끝없이 하게 되는 지루함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다.
 
2001
년 첫 작업에서 2006년 작업에 이르기까지는 주변의 ‘대충,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넘어가는 상황, 그리고 그런 심리 때문에 벌어지는 부작용들에 대한 반응이다. 이를테면 부실하게 지어진 건물을 보면서 공사과정의 정직하지 못한 상황들을 추측하거나, 주변 여기저기에서 벌어지는 과도한 속도감에 대한 거부심리를 반영하는 식이다.
 
이후 작업은 한국인들의 폭력적 마인드의 근거에는 무엇이 있는가에 대해 생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 ‘한국전쟁’과 관련된 것들이다. 그러나 ‘전쟁’에 개념적으로 깊이 개입했다기보다는 전쟁기념관에서 살펴본 많은 당시 사진자료를 보고 얻은 감상에 가까운 것이다. 수많은 부대들의 상징기와, 무기들(첨단무기에서부터 매우 단순한 원시적 무기에 이르기까지), 그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을 담은 영상들, 끊겨진 다리 사진, 피의 흔적 등.
집단, 국가 안의 개인은 너무도 보잘 것 없다. 전쟁, 그리고 이후 민주주의 정립 혼란기, 반공 이데올로기 , 미국의 개입, 군사정치,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그런 사회 안에서 먹고, 자라고 아이를 낳고를 반복했다. 그들의 정신적 변화- 자신들이 느끼지 못하는 집단적 행동, 폭력적 언행이 내 주변에서 늘 보이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들 안에는 나 또한 섞여있다. 폭력이 버무려진 상황 안에서 늘 나와 사람들을 측은하게 또는 불만스럽게 바라본다.
 
작업은 공격성을 지닌 무기의 형태 또는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연약한 재료와 구조로 보여진다. 저항은 하되, 거대한 반란이 아닌 즉각 일어나고 사라지는 소박한 ‘시도’의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기술적인 부분이 최소로 필요하고 거리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 누구나 만들 수 있을 법한 보잘 것 없는 저항의 제스츄어들.
말하자면, 길거리식 테러, 분말에 가까운 게릴라식 저항이다.

이우연


A guerilla resistance started from a displeased violence of neighbor. 
 

 The main motive of works is a displeased violence that comes from thoughts and behaviors that it is hard to understand that lies hidden as a genetic inheritance regardless of individual will. The violence that it can be seen from many people is related to experiences that parents and grand-parents suffer at the past. In other words, stresses from the violence can be said that it comes from a boring that makes people think if we can be happy. 
 These are reactions on side-effects that happen because of a circumstance, just by pass, from the first work in 2001 to the work of 2006 and these mental states. For instance, rejections to excess speeds that occur here and there or guess the conditions that are not honest when seeing a building that is incompletely constructed.
Works after that are things that are related to Korea War that naturally meets when thinking what is the basal of a violence mind of Koreans. However, this closes to feelings that are obtained after seeing pictures at the War Hall rather than it is deeply intervened in the war as a notion.

Numerous symbol flags and weapons (from up-to-date one to primitive one that is very simple) of forces, videos that show peoples life at that time, pictures of discontinuous bridges, bloods and so on.

 Individuals in a group and country are meaningless. People eat and are grown and born babies and repeat these in the society from the war time, the confusion time when taking roots a democracy, an anticommunism ideology, an intervention of America, a military junta to now. A change of mental of them, this is the reason why behaviors of group that they can not feel themselves and a violence are closed to me. I am also mixed in there.

I watch me and other people without satisfaction or with compassion in the circumstance that violence is mixed.

Even if the work has shapes or characters of weapons that have an aggression, this is shown as a weak material and structure. The reason is that there is a character, try, that it occurs and disappears soon that is not rebellion even if it resists. The gestures of meaningless resistance that is thought that everyone can make and the minimum technical parts are needed.

Generally speaking, this is roads terror, a guerilla resistance closed with just a dust.

Wooyeon, Lee

by 이우연 | 2008/05/14 00:12 | statement | 트랙백 | 덧글(0)
우발적 커뮤니티 전시서문

우발적 커뮤니티 Movement, Contingency and Community

 

기간(일시) : 2007. 10. 18 - 2007. 11. 12

장소: 계원예술대학 내 GALLERY27

오프닝: 2007 10 18일 오후 6시  

             참여작가: 잔 알타이Can Altay, 니나 카넬Nina Canell, 루노 라고마르시노 Runo Lagomarsino, 지미 로버트Jimmy Robert, 이주요Jewyo Rhii, 이우연Woo Yeon Lee, 피진 콜렉티브Pidgin Collective

기획: 김현진

문의: 박재영 010 3394 2652 / gallery27@gmail.com

 

   본 전시는 합목적성을 지니지 않은 공동체 , 우발적인 촉발, 그리고 그것의 잠재태로서의 운동성 등을 이야기하게 된다. 전시가 말하는 "공동체(Community)"의 개념은 정치사회적인 태도들에 대한 직접적 선언이나 액티비즘의 외부에 놓여져있는 잠행적인 개별자들의 연대로써 , 사회에 우회적인 발언과 존재적 실천을 통해 개입해 나가는 Singular(특유)한 존재들의 존재론적 접촉으로 접근될 수 있는 '이미 도래해 있는(그러나 발굴되어야 할) 혹은 장차 도래할 공동속의 존재들'을 말한다. 이러한 모든 내용은 작금의 현대미술 속에서 개별적으로 존립하면서 독자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작가들의 작품 세계와 그들의 미술 언어들을 탐색함으로써 접근해 볼 수 있고, 본 전시는 그러한 특이성, 우발성 , 운동성을 지닌 비가시적인, '부재하는 공동체', '공동체가 없는 공동체'를 이야기해 보는 자리로 마련된다.

 

참여작가로는 잔 알타이Can Altay, 니나 카넬 Nina Canell, 루노 라고마르시노Runo Lagomarsino, 지미 로버트Jimmy Robert, 이주요, 이우연, 임민욱 등 국내외의 7명의 젊은 작가들이 참여하며 , 16mm 필름, 비디오, 설치, 드로잉 등의 다양한 작업들이 섬세한 작업 언어와 존재론적 시선들을 나누면서 관객과 조우하게 될 것이다

 

 

   

전 시 서 문

 

" 부서지기 쉬움과 불확실성 가운데에서의 벌거벗음. 가장 밝힐 수 없는(inavouable) 유대관계에 낯선 것이 있고, 동시에 가장 평범한 만남에 낯선 것이 있다. 그러한 낯선 것 , 즉 당황스럽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낯선 것에 노출된, 뚜렷이 내비치는 벌거벗음." -장 뤽 낭시, 마주한 공동체La Communautée affrontée

 

" 당신은 어떻게 사랑의 감정이 솟아날 수 있냐고 물었다. 그녀는 당신에게 대답한다. 아마도 우주의 논리 속에서 갑작스럽게 균열이 생김으로써...예를 들어 실수로...결코 의지로는 아닌 ." -마르그리트 뒤라스, "죽음을 가져오는 병"에서

 

" 공동의 것이 될 수 없는 낯선 것이 영원히 일시 적일 수밖에 없으며 언제나 이미 떠나 있을 수밖에 없는 공동체를 세운다" 모리스 블랑쇼, '밝힐 수 없는 공동체La Communauté Inavouable" 중에서

 

우발적 커뮤니티Movement, Contingency, and Community 라고 이름붙여진 이 전시는 7명의 작가들과 더불어 보다 초월적인 커뮤니티의 가능성에 대하여 접근해본다. 일반적으로 언급되는 공동체의 개념은 무엇에 귀속되거나 그것을 위해 작동하는 축소된 형태의 사회적 연합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 전시가 바라보는 공동체는 어떠한 목적이나 과제를 수행하거나 어떤 생산적 가치를 지향하지 않는다 . 오히려 이러한 커뮤니티는 낯선자 혹은 모르는 자에 대한 우정이나, 연인들의 사랑처럼 이질적인 결합이나 반사회적인 측면들 속에서 내밀함을 갖는 무엇으로, 어떤 밝힐 수 없는 공동체(모리스 블랑쇼 ), 혹은 공동-내의-존재(장 뤽 낭시)들의 보이지 않는 관계로부터 마련된다. 이것은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으로부터 오며 , 잠행적인 개별자들의 우발적 조우의 순간, 그리고 그러한 상황 속에 확인되는 존재적 수행, 진정한 나와 타자와의 마주함안에서 확인될 수 있다.  

 

이러한 공동체의 모습은 균열과 기이함을 지니며 이질적이며, 비균질적이고 비대칭적이며, 비약적인 관계들을 또한 내포하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계기 가운데서의 우발성, 이것이 마련하는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속에는 어떤 운동성 또한 포착된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지오 아감벤 (Giorgio Agamben)은 운동(movement)의 개념을 고찰하면서 "운동이 거기에 있는 것처럼 보일 때 운동은 거기에 없으며, 운동이 거기에 없는 것처럼 보일 때 운동은 거기에 있다 "라고 언급하며, 진정한 운동은 잠재태로서의 잠재태의 구축이라고 말한다. 그에 반해 일반적으로 일컫는 운동이 있는 곳에는 사람들을 자르고 분할하는 단절이 있으며 이 경우 적을 명확하게 하게 되고 여기에서 다시 운동은 비정치적인 것(대중이나 사람들 )에 대해 정치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문제점들이 발생하며, 때문에 역설적으로 운동이 시작되는 곳에서 민주주의는 끝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운동의 개념이 존재론적으로 재정립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따라서, 여기서 이야기하는 운동이란 구체적인 목적을 띄지 않고도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태동가능한 무엇이다. 또한 이것은 냉철한 인식과 존재적 실천을 통해 개입해 나가는 단독자들(singular being)의 결합으로 이들은 자기 가운데서 타자를 호명한다 .

 

이것은 동시대 현대미술의 한가운데서 새로운 인식과 존재적 접촉을 시도하는 주변부로부터 우리의 삶속에 들어오는 작가들의 작업 속에서 발견해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 근본적인 미술의 존립 가치는 무엇으로의 잠재적 변화, 혹은 무엇에 대한 인식적 전환을 위한 가능성을 내포하는 데 있으며, 작가들의 다양한 성찰과 그 성찰을 수행하는 진정성 있는 작업들은 바로 이러한 미술적 가치의 핵심에 놓여져 있다 . 이 전시에 등장하는 작가들-잔 알타이Can Altay, 니나 카넬Nina Canell, 루노 라고마르시노Runo Lagomarsino, 지미 로버트Jimmy Robert, 이주요Jewyo Rhii, 이우연Woo Yeon Lee, 피진 콜렉티브Pidgin Collective-은 바로 개별적인 인격체들이 삶 속에서 마주하는 접촉과 그에 대한 정치적 사유, 그 우발적 사건 속에 잠재한 가능성 , 나와 타자간의 실존적 나눔의 양태들을 매우 섬세하게 인식하고 풍부한 층위의 미술언어를 통해 드러낸다. 이들은 실질적 무엇에 기초한 동질적인 공동체를 강조하거나 그에 부합하는 관점을 작품에 직접적으로 투사하지 않는다. 때문에 미술계 내부에 이들의 자리는 아직 채 정의되지 않았으며 , 어쩌면 영원히 무엇에 기초하지 않을 수 있다. 이들에게는 단일한 소속이나 지정학적, 국가적, 민족적인 결속과 같은 구체적 근거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그보다 , 이미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다양한 존재들의 모습과 그들과의 새로운 접촉의 가능성, 그에 대한 보다 진화된 인식, 그리고 부재하는 공동체의 비가시적인 연대를 위한 통로를 작품 속에서 발견하게 하며, 특히 나와 타자 , 혹은 외부와의 관계에서 진동한다. 이러한 면모가 단순히 이들 작품의 의미를 해석하고 그 내용을 파악함으로서만 확인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들이 미술 언어를 다루는 섬세함과 냉철함, 미술에 대한 확신과 책임감 , 진정성을 통해서도 또한 발의되는 것으로, 이것은 다시 이들의 세계에 대한 책임감, 작가적 윤리의 내용과도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지점들이 전시라는 전형적인 형식을 빌어 등장하는 것이 어쩌면 본 기획의 한계일 수도 있을 것이다 . 어쩌면 본 전시는 무엇을 떠난 만남, 즉 작은 무위의 공동체(Inoperative Community)를 일시적으로나마 가시화해보기 위한 핑계에 불과할 수 있다고 고백하고 싶다. 그저 또 다른 존재들이 이들의 작업 언어를 통해 바깥에서 또 다른 바깥을 향해 말을 건네는 단독자들간의 대화를 목격함으로서 , 보다 깊이 있는 만남의 가능성, 그 의미와 조우하기를 기대해본다

  

: 김현진

by 이우연 | 2007/10/15 23:33 | exhibition | 트랙백(1) | 덧글(0)
우발적 커뮤니티_Movement, Contingency and Community

Movement, Contingency and Community
2007. 10. 18 - 2007. 11. 12
GALLERY27, Kaywon Art and Design School

Artist : Can Altay, Nina Canell, Runo Lagomarsino, Woo Yeon Lee, Jewyo Rhii, Jimmy Robert and Pidgin Collective

Curated by Hyunjin Kim

Opening: 2007. 10. 18. 6 pm 

Gallery27, Kaywon Art & Design School
San 125, Naeson-dong, Uiwang-si,
Gyeonggi-do, South Korea, 437-712

www.kaywon.ac.kr/gallery27@gmail.com


 

by 이우연 | 2007/10/13 21:43 | exhibition | 트랙백 | 덧글(0)
검소한 건축 -come quick danger_여기 이 곳을 보라

이우연의 이번 개인전 “come quick danger(여기 이 곳을 보라)”는 전쟁기념관에서 접한 전쟁 관련 자료들로부터 얻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전쟁 같은 거대폭력의 성격이나 경로, 이미지 등을, 가볍고 구하기 쉬우며 즉각 활용할 수 있는 오브제를 가지고 해석․압축․변주하여 기표화한다.

알고보면, 규모와 관계없이, 폭력이나 폭력성․폭력적 상황은 어디에서나 천연덕스럽게 스스로를 과시하는데, 그것의 폭력적인 천연덕스러움, 그리고 천연덕스러운 폭력성이, 이우연의 이 전시에서는 그가 활용하는 천연덕스러운 재료와 결구법을 통하여 기지 섞인 비장함, 혹은 비장한 기지로 드러나고 있다.

위협이나 공격, 전쟁 등 숱한 폭력들은 의외로 우리와 가까이 있다. 일상 순간순간에 포진한 아주 미미한 폭력적 본능에서부터 집단이나 국가 간에 치르는 대규모 전쟁에 이르기까지. 그것은 ‘가까이에’ 있다 못해 심지어 내 ‘안에’ 있다. 그러므로 폭력은 체포해서 박멸할 ‘대상’이 아니라, 내 안에서 끄집어내어 치유해야 하는 일종의 본능의 ‘작용,’ 또는 상처나 염증이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좀더 종교적 차원에서 말한다면, 폭력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원초적 죄―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지 아니함―에서 비롯하는 것. 역사적 경험을 돌이켜보면 폭력은 적의 것으로 간주하고 징계해서 다스려지는 게 결코 아니었다. 좀더 멀리 내다보는 안목을 가지고서, 그것이 ‘내 탓’임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내가 반대하는 바로 그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우연이 “폭력성을 관심있게 바라보는 것은 결국 내 안에 역시 잠재해 있는 폭력성의 정체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서 있는 여기 이 곳을 밝혀보려 하는 것이다” 라고, 그 특유의 연민 섞인 말투로 쓴 작업노트는 의미심장하다. 전쟁은 남이 저지른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의 조형 매무새가 즉각적이고 허술해보이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시큼시큼하고 버거운 진통 끝에 ‘겨우’ 나타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의 ‘겨우’ 나타남은 폭력의 견고한 구조를 역설적인 언어와 결구법으로 해체하고 치유하려는 ‘검소한’ 마음 씀씀이임을 알아야 한다.

도무지 스스로를 과시하거나 포장하거나 스스로에게 위엄을 부여할 염사조차 없는 부재(部材)들을 데리고 이우연은 어느 황막한 벌판에 소리 없이 집을 짓고 있다. 전동 장비 없이 맨 손으로, ‘겨우’ 얻어온 재료 몇 가지로, 느리고 서툰 솜씨로, 그렇지만 성심껏.


김학량(독립 큐레이터, 동덕여대 큐레이터과 전임강사)


Simple Architecture


Gim Hak-ryang (Curator/ Full-time Instructor, Dept. of Curator Major, School of Find Arts, Dongduk Women’s University)


Lee Woo-yeon’s solo exhibition, “Come Quick Danger_Look Right Here” is said to start from the ideas which the artist got from the materials in the War Memorial of Korea. She interprets, condenses, varies the nature, course, and image of gigantic violence like war with objects that are light, easy to obtain, and ready to use, finally transforming them into signifiers.

In fact, regardless of scale, violentness, violences, or violent situations show off themselves unblushingly at anytime and anywhere. Their violent unblushingness and unblushing violence become witty patheticness or pathetic wit by combining with the unblushing materials and structuring method the artists applied in this exhibition.

Violences such as threats, attacks, and wars are closer to us than we think, from the very feeble instinct of violence found in every moment of daily life to large-scale wars between groups or nations. They are ‘near’ us, or more frankly, even ‘in’ me. Therefore, violence is not an ‘object’ to be arrested and exterminated; it is more like some ‘operation’ of instinct, or a wound or inflammation to be drawn out and cured. Or, to speak in a more religious way, it comes from our original sin―the inability to love our neighbor as ourselves. Historical experience teaches us that violence is in no way something that could be punished and controlled only by ascribing it to the enemy. We should take a long-range view and modestly accept that ‘I’ am to blame for it. I am what I am against.

In this sense, it is very suggestive that Lee, in a compassionate tone peculiar to her, wrote in her note like this: “a careful observation of the violence in Koreans is eventually the process for me to find the same quality in me. This is why I aims to light up here, the very place where I am standing.” Wars are not something committed by others. The appearances of her works may seem to be immediate and loose; but the more they seem to be like that, the more clearly we should understand that they ‘barely’ manage to be born after heavy, bitter travail. We should be aware that this ‘barely’ emergence is no less than the artist’s ‘simple’ generosity to deconstruct and heal the solid structure of violence with paradoxical language and structuring method.

With structural members that do not have the slightest idea of showing themselves off, putting up a good front, or giving dignity to themselves, Lee is silently building a house in a desolate and forlorn field―with her hands and without any electric powered machines, with a few materials that he ‘barely’ obtained, awkwardly and slowly, but sincerely and devotedly.

by 이우연 | 2007/10/03 09:20 | statement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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